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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신한은행 세계 기선전 최종국 승리 후 복기 장면 |
박정환 9단이 세계 바둑대회 최고 상금(연간 개최 대회) 4억 원이 걸린 기선전 초대 왕좌에 오르며 한국 바둑의 자존심을 지켰다.
27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15층 특설 대국장에서 열린 제1회 신한은행 세계 기선전 결승 3번기 최종국에서 한국랭킹 2위 박정환 9단이 중국랭킹 3위 왕싱하오 9단을 상대로 23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며 종합전적 2:1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최종국의 압박 때문일까. AI그래프는 시종일관 큰 폭으로 움직였다.
흑을 잡은 왕싱하오 9단이 초반 근소하게 리드했으나 박정환 9단(백)이 초강수(80‧82수)를 두어가며 국면은 대혼돈에 빠졌다. 백 대마와 흑 대마가 서로 얽혀 AI 승률그래프도 오류가 날 만큼 복잡한 대마싸움이 벌어졌다. 일촉측발의 순간이었지만 짧은 시간 모든 수순을 읽어낼 수 없었던 두 기사는 타협의 길을 택했고, 형세는 다시 팽팽하게 맞물렸다.
미세한 끝내기 승부로 흐르는 듯 했던 국면은 박정환 9단이 다시 상대의 빈틈을 찾아내 강렬하게 공격(176수)했고, 그 수가 승착이 됐다. 곤경에 처한 왕싱하오 9단은 패로 버티며 저항했으나, 박정환 9단의 정확한 대응에 더 이상 착수를 이어가지 못하고 항서를 썼다.
▲우승 후 검토실을 찾은 박정환 9단(왼쪽)을 꼭 껴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한국기원 정태순 이사장
이번 승리로 박정환 9단은 통산 6번째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21년 삼성화재배 이후 5년 만의 메이저 타이틀을 품에 안은 박 9단은 왕싱하오 9단과의 상대전적도 3승 3패로 균형을 맞췄다.
93년생 박정환 9단은 이번 대회에서 쉬하오홍(대만), 양카이원(중국), 이치리키 료(일본), 당이페이(중국) 등의 세계적인 기사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22세 중국의 차세대 에이스 왕싱하오 9단을 상대로 33세 박정환 9단이 열세일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으나, 박 9단은 11살 나이 차를 극복하고 초대 기선전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박정환 9단은 이번 우승으로 조훈현 9단을 제치고 최장기간(14년 6개월)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 기록을 경신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2011년 8월 만 18세 나이로 제24회 후지쓰배에서 첫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한 박 9단은 14년 6개월 만에 기선전을 쟁취하며 종전 기록인 조훈현 9단의 13년 4개월(1989년 9월 1회 응씨배 우승~2003년 1월 7회 삼성화재배 우승)의 메이저 세계대회 최장기간 우승 기록을 넘어섰다.
▲우승보드를 든 박정환 9단(오른쪽)과 시상자 신한은행 정상혁 은행장
2013년 11월부터 2018년 9월까지 무려 59개월 연속 한국랭킹 1위를 수성했으나, 2020년 1월 이후 1위를 탈환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 2위에 머물렀던 박정환 9단은 이번 우승으로 다시 1인자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 한국랭킹 1위이자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기사는 신진서 9단이다.
우승 직후 박정환 9단은 “흑이 백 대마를 공격하며 두 번정도 실수가 나온 것 같은데 그 이후 제가 역공을 가하면서 바둑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라며 “2021년 세계대회 우승 이후 계속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는데, 오늘 우승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우승 상금 4억보다 초대 기선에 오른 명예가 더 기쁘고 지금 꿈을 꾸는 기분이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성적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결승전 직후 이어진 시상식에는 신한은행 정상혁 은행장과 김정훈 그룹장, 매일경제신문 손현덕 주필, 한국기원 정태순 이사장과 양재호 사무총장, 한국프로기사협회 조한승 회장 등이 참석해 선수들을 축하했다.
▲두루마기와 갓을 착용하고 우승 트로피와 함께 포즈를 취한 박정환 9단
특히 이날 시상식에는 우승자 박정환 9단이 한국 전통 의상이자 전 세계를 매료시킨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연상케 하는 ‘두루마기’와 숭례문과 신한은행 로고가 순은으로 세공된 ‘갓’을 착용하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먼저 우승자 시상을 맡은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국보 숭례문을 형상화한 신한 기선전 챔피언 트로피와 우승 상금 4억 원을 박정환 9단에게 전달했다. 또한 세계적인 명품 핸드백 제조사 시몬느에서 특별 제작한 시그니처 가방과 최고급 수제 바둑판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준우승자 왕싱하오 9단(오른쪽)과 시상자 매일경제신문 손현덕 주필
이어 매일경제신문 손현덕 주필이 준우승자 왕싱하오 9단에게 준우승 상금 1억 원과 꽃다발을 전달했다.
제1회 신한은행 세계 기선전은 신한은행이 후원하고 매경미디어가 주최하며 한국기원이 주관했다. 연간 개최 대회 중 세계 최대 우승 상금 4억 원과 이색적인 ‘K-시상식’으로 화제를 모은 이번 대회는, 한국 박정환 9단의 우승과 함께 전 세계 바둑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준우승 상금은 1억 원이며 제한시간은 시간누적(피셔) 방식으로 각자 30분에 추가시간 20초가 주어졌다.